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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성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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찻잔과 인생. 유지혜 - 미워하는 미워하는 미워하는 마음 없이 찻잔을 잡은 그의 손 마디마디의 섬세함과 조심스럽고 부드럽게 잔을 기울이는 행위를 지켜보는 것은 눈을 감지 않고 하는 명상이었다. 발소리도 주의하게 되는 성당에 들어온 기분으로 졸졸 아름다운 소리를 들었다. 그는 액체가 흘러 내려갈 수 있게 구멍이 나 있는 나무 받침대에 용기들을 두고 뜨거운 물을 부어 잔을 달궜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언제나 물을 넘치게 붓는다는 거였다. 세례를 하듯 찻잔을 끝까지 물로 적셔 모든 부분을 꼼꼼하게 데웠다. 아슬아슬하지만 이완을 부르는 광경이었다. 차도, 어떤 하루들도 머리끝까지 잠겨야만 비로소 완성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었다. 밖을 나서니 특별한 날이 아닌 보통의 날들이 끝없이 펼쳐져 있었다. 하얀색 도화지처럼 평범해서 눈부신 날들. 이유 없이도 축하해야 할 날들이. ..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문제들. 가랑비메이커 - 가깝고도 먼 이름에게 시간이 반드시 필요한 문제들이 있어. 하얀 머리카락을 까맣게 칠한다고 해서 하얗게 자라나는 뿌리를 막을 수는 없어. 아무리 애를 써도 제자리를 찾아오는 문제 앞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가만히 멈춰 서서 시간을 두고 바라보는 일이야. 문제가 문제가 되지 않을 때까지. 나는 이제 듬성듬성 난 새치를 가장 완벽히 가려줄 백발의 시간을 기다리는 중이야. ⓒ 가랑비메이커 - 가깝고도 먼 이름에게 문장과장면들
[늘 설레는] 김보민 - 당신의 어제가 나의 오늘을 만들고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 첫머리에 적힌 작가의 말을 읽을 때처럼 고소한 향기가 풍겨 나오는 아침의 빵집 앞을 지나갈 때처럼 밤새 소복이 쌓인 눈 위에 첫 발자국을 찍을 때처럼 새로 산 다이어리의 첫 장을 채울 때처럼 채 마르지 않은 머리위로 봄바람이 불어올 때처럼 발에 꼭 맞는 새 구두를 신고 집 밖을 나설 때처럼, 늘 설레는 ⓒ 김보민 - 당신의 어제가 나의 오늘을 만들고 행복우물
[외로움과 자유함] 가랑비메이커 - 가깝고도 먼 이름에게 "넌 이따금 혼자인 것 같더라. 별뜻은 없어. 좀 자유로워 보여서." 그때 알았어. 외로움과 자유함은 같은 모양을 하고 있다는 걸. 그래서 이따금 제 자신도 오해하게 만들기도 한다는 걸 말이야. 그날 눅눅한 공기 중에 들려오던 J의 말이 아니었더라면 난 나를 오해하고 있었을 거야. 외로운 사람이라고. ⓒ 가랑비메이커 - 가깝고도 먼 이름에게 문장과장면들
[인생의 환절기] 가랑비메이커 - 가깝고도 먼 이름에게 창밖의 환절기와 함께 인생에도 환절기가 당도한 것 같아요. 제 삶의 풍경은 언제나 변함없을 거라고 믿었던 시절이 있었어요. 환절기가 오기 전까지 우리는 그시절, 그 계절이 마치 영원하기라도 할 것처럼 살아가니까요. 하지만 마침내 제 삶에도 마른 기침을 콜록이는 환절기가 시작됐어요. 무심하고 무던하게 환절기를 건너오는 사람들이 늘 부러웠어요. 작은 변화에도 민감한 저는 창밖의 풍경이 달라지기도 전에 퉁퉁 부은 눈과 함께 마른 기침을 뱉기 바쁜 사람이니까요. 매년 찾아오는 계절의 전환에도 이토록 유난스러운 제 인생의 환절기는 이렇게 흘러가고 있어요. ⓒ 가랑비메이커 - 가깝고도 먼 이름에게 문장과장면들
[문장 안에 살다 오는 것] 김애란 - 잊기 좋은 이름 "누군가의 문장을 읽는다는 건 그 문장 안에 살다 오는 것이다." 문장 안에 시선이 머물 때 그 머묾은 잠시 산다라는 말과 같다. 그 시간은 흘러가거나 사라질 뿐 아니라 불어나기도 한다. 시간은 흘러가는 게 아니라 이어지고 포개진다. ⓒ 김애란 - 잊기 좋은 이름 열림원 *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쿠팡 : https://link.coupang.com/a/kZEk7 잊기 좋은 이름(리커버):김애란 산문 COUPANG www.coupang.com 알라딘 :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6905794&start=slayer 잊기 좋은 이름 (리커버) 소설을 통해 내면의 모순을 비추..
[김솔통 같은 글] 김혼비 - 다정소감 앞으로 자주 애용하게 될 마트와 낯을 트기 위해 구석구석을 꼼꼼히 살폈다. 그러다가 발견했다. 한구석에 걸린 처음 보는 물건을. 작은 솔이 수직으로 꽂혀 있는 작은 플라스틱 통으로 이름은 김솔통이었다. 그것은 김에 기름을 바를 때 쓰는 김솔을 담아 두는 통이었다. 김솔통 같은 글을 쓰고 싶다. 그래, 이거였다. 나는 갑자기 김솔통 같은 글을 쓰고 싶어졌다. 지구상의 중요도에 있어서 김도 못 되고, 김 위에 바르는 기름도 못 되고, 그 기름을 바르는 솔도 못 되는 존재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분명 그 잉여로우면서도 깔끔한 효용이 무척 반가울 존재. ⓒ 김혼비 - 다정 소감 안온북스 *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쿠팡 : https://link.c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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