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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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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안에는 늘 이상한 우스움이] 김애란 - 잊기 좋은 이름 활자 속에 깃든 잔인함과 어쩔 수 없는 아늑함에도 불구하고 '말' 안에는 늘 이상한 우스움이 서려 있다. 멋지게 차려입고 걸어가다 휘청거리는 언어의 불완전함 같은 것이. 언어는 종종 보다 잘 번식하기 위해 보다 불완전해지기로 결심한 어떤 종種처럼 보인다. ⓒ 김애란 - 잊기 좋은 이름 열림원
[행복해 한 순간] 김애란 - 잊기 좋은 이름 그러니 아마 그즈음이었으리라. 아버지가 살면서 가장 행복해한 순간은.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 시절 부모님의 사진을 보면 느낄 수 있다. 30년 전 아버지는 진심으로 자기 인생을 좋아하는 사람의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니 회사 점심시간에 밥도 거르고 신혼방으로 엄마 얼굴을 보러 갔을 거다. 가슴팍에 호방을 넣고, 그게 식을까 봐 수도국산 꼭대기까지 종종거리며 달려갔을 거다. 아버지는 호방에는 손도 안 대고 아내가 먹는 모습만 쳐다봤다. ⓒ 김애란 - 잊기 좋은 이름 열림원
[너무 많은 것을 회고하지는 않기로] 김애란 - 잊기 좋은 이름 버스 창문을 여니 새삼 서늘한 바람이 불어왔다. 라디오에선 내일부터 추워질 거란 소식이 전해졌다. 그러니까 오늘은 여름과 작별하는 날이다. 나는 이 시절이 다시 오지 않을 것 같은 생각에, 이런 여름은 이제 없을 것 같은 예감에 쓸쓸했다. 이 이야기를 오랜 친구에게 하자, 나보다 속 깊은 친구는 수화기 너머로 나직하게 말했다. 그런 느낌 앞으로 마흔여덟 번은 더 있을 테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나는 앞으로 내가 겪을 일들을 생각했다. 소설 바깥의 말과 입장에 대해서도. 그러니 너무 많은 것을 회고하지는 않기로 한다. 여름과 작별하는 일은 마흔여덟 번도 더 남아 있을 테니까. ⓒ 김애란 - 잊기 좋은 이름 열림원
[이해한다는 건] 김애란 - 잊기 좋은 이름 만일 우리가 타인의 내부로 온전히 들어갈 수 없다면, 일단 바깥에 서보는 게 맞는 순서일지도 모른다. 그러느라 때론 다리가 후들거리고 얼굴이 빨개져도 우선 서보기라도 하는 게 맞을 듯했다. 그러니 이해란 타인 안으로 들어가 그의 내면과 만나고 영혼을 훤히 들여다보는 일이 아니라, 타인의 몸 바깥에 선 자신의 무지를 겸손하게 인정하고, 그 차이를 통렬하게 실감해나가는 과정일지 몰랐다. 그렇게 조금씩 바깥의 폭을 좁혀가며, 밖을 옆으로 만드는 일이 아닐까 싶었다. 세월호 참사 희생자들의 명복을 빈다. ⓒ 김애란 - 잊기 좋은 이름 열림원
[문장 안에 살다 오는 것] 김애란 - 잊기 좋은 이름 "누군가의 문장을 읽는다는 건 그 문장 안에 살다 오는 것이다." 문장 안에 시선이 머물 때 그 머묾은 잠시 산다라는 말과 같다. 그 시간은 흘러가거나 사라질 뿐 아니라 불어나기도 한다. 시간은 흘러가는 게 아니라 이어지고 포개진다. ⓒ 김애란 - 잊기 좋은 이름 열림원 *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쿠팡 : https://link.coupang.com/a/kZEk7 잊기 좋은 이름(리커버):김애란 산문 COUPANG www.coupang.com 알라딘 :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286905794&start=slayer 잊기 좋은 이름 (리커버) 소설을 통해 내면의 모순을 비추..
[문학이란 어쩌면] 김애란 - 잊기 좋은 이름 나는 수상소감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나도 잘 모르는 소리를 하며 한껏 폼을 잡았다. 하지만 중간에 코르크 마개가 부서진 와인을 따기 위해 젓가락과 숟가락을 동원해 합심하는 지인들 곁에 앉았을 때, 아버지가 얹어준 고기를 꿀떡 삼키며, 문학이란 어쩌면 당신들을 초대한 여기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니라, 여기까지 기꺼이 와준 당신, 바로 그 사람들 곁에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 김애란 - 잊기 좋은 이름 열림원 *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쿠팡 : https://link.coupang.com/a/kZEk7 잊기 좋은 이름(리커버):김애란 산문 COUPANG www.coupang.com 알라딘 : https://www.aladin.c..
[세상 어딘가를 떠돌고 있는] 김애란 - 잊기 좋은 이름 그런데 그 외 나머지 말, 나머지 기억, 나머지 내 봄, 내 어둠, 당신의 계절은 모두 어디 갔을까. 어쩌면 그것들은 영영 사라진 게 아니라 라디오 전파처럼 에너지 형태로 세상 어딘가를 떠돌고 있지는 않을까. 그러다 드물게 주파수가 맞는 누군가의 가슴에 무사히 안착하고, 어긋나고, 보다 많은 경우 버려지고, 어느 때는 이렇게 최초 송출지로 돌아와 보낸 이의 이름을 다시 묻는 건지도. ⓒ 김애란 - 잊기 좋은 이름 열림원 * 이 포스팅은 쿠팡 파트너스 활동의 일환으로, 이에 따른 일정액의 수수료를 제공받습니다. 쿠팡 : https://link.coupang.com/a/kZEk7 잊기 좋은 이름(리커버):김애란 산문 COUPANG www.coupang.com 알라딘 : https://www.aladin.co..
[나를 키운 팔 할] 김애란 - 잊기 좋은 이름 고 3 여름방학 때 나는 사범대학에 가라는 어머니의 뜻을 거스르고 예술학교 시험을 봤다. 그건 내가 부모에게 한 최초의 거짓말은 아니었을지라도 결정적 거짓말이었다. 나를 키운 팔 할의 기대를 배반한 작은 이 할, 나는 그게 내 인생을 바꿨다고 생각한다. 동시에 내가 그런 결정을 내릴 때까지 내 몸과 마음을 길러준 팔 할, 갈수록 뼈가 닳고 눈과 귀가 어두워져가는 그 팔 할에 대해서도 자주 생각한다. 어릴 땐 꿈이 덤프트럭 기사였고, 아는 것 적고 배운 것 없지만 '그게 다 식구니까 그렇지' 라는 말로 부터 멀리 달아나셨던 분. 그렇지만 아주 멀리 가지는 못하신 분. 내겐 한없이 다정하고 때론 타인에게 무례한, 복잡하고 결함 많고 씩씩한 여성. 그리고 그녀가 삶을 자기 것으로 가꾸는 사이 자연스레 그걸 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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